트럼프 “북한 핵보유국” 발언은 협상 제안 신호…한국은 당혹 > Amer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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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여러 행정명령 등에 서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 보유세력”이라고 언급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부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을 테니 협상을 시작하자고 초대장을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대응할 사령탑 없이 외교의 손발이 묶인 한국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취임식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며 자신과 김 위원장의 관계를 소개했다. 이날 퇴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어떤 위협을 지목했냐는 질문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 나온 말이었다. 그는 “이제 그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 세력)다. 우리는 잘 지냈다. 그가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 세력”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전례가 없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국방장관인 피트 헤그세스는 지난 14일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북한을 “핵보유세력”으로 언급했다. 헤그세스 장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핵보유 세력’(nuclear power)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엔피티) 체제에서 합법적으로 핵무기 가진 5개국(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을 지칭하는 공식 핵보유국(nuclear-weapon state)와는 차이가 있다. ‘핵 능력을 가진 세력’ ‘사실상의 핵보유국’ 정도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북한을 ‘핵보유 세력’으로 언급한 것은 엔피티 체제는 깨지 않으면서도, 북한을 향해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을 테니 협상에 나오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해온 북핵 협상의 판을 바꾸는 것이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도 15일 상원 외교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제재는 김정은이 핵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대북 정책을 보다 폭넓고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는 “난 그가 엄청난 콘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해안을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콘도’는 김정은 위원장이 개발하고 있는 원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개발 업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1·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북한의 부동산 입지가 훌륭하고, 원산이 리조트 개발에 적합한 지역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날 언급은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대화에 나오면 대북 제재를 풀고 원산 등을 같이 개발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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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 30여년 동안 지속해온 북한 ‘비핵화 협상’의 판을 바꾸려는 지금, 한국이 미국과 긴밀하게 조율하면서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반영시킬 수 있느냐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와 지지세력들의 난동 등으로 외교적으로 손발이 묶여 있다. ‘대행체제’ 한국 외교가 미국과 이 문제를 제대로 조율할 수 있을지, 갈라진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외교부는 매우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국책 연구기관의 안보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한국이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제대로 반발하고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라면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는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핵 위협을 줄여나갈 실용적 접근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현재 미국과 이 부분을 논의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