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영생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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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안데르스 샌드버그 스톡홀름 미래학연구소선임연구원, 나카우치 히로미쓰 스탠퍼드대 교수, 스티븐 어스태드 앨라배마대 교수,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
[WEEKLY BIZ] [Cover Story] "당신의 과거 기억, 데이터센터에 저장...수세기 동안 살아숨쉬게 될 것"
2100년의 미래. 당신은 과거의 기억을 기억 탱크에 저장해 두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된다. 정신이 계속 살아남게 되면 인간의 외피(外皮)인 몸뚱이가 노쇠하더라도 당신의 존재는 불멸한다. 인간이란 종(種)을 생물학적으로만 정의 내리기 어려워 ‘포스트 휴먼’이란 새로운 개념도 등장한다. 정신적 영생(永生)뿐이 아니다. 생물학적 노화도 거스르는 세상이 열린다. 마치 썩은 이를 빼고 임플란트를 심듯, 내 장기와 똑같은 장기를 키워내 병든 나의 장기와 바꿔 다는 날이 온다.
마치 공상과학(SF) 영화 속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나이 듦’이란 시간 흐름을 거스르고 영생을 꿈꾸는 과학적 연구가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WEEKLY BIZ는 항(抗)노화 등 각 분야 전문가 4인을 인터뷰해 인류의 미래에 펼쳐질 영생의 세계를 미리 엿봤다. “당신의 기억은 분명 백업 복사본을 갖게 될 것”이란 뇌과학자, “당신의 장기를 자동차 부품처럼 갈아 끼우게 될 것”이라는 의대 교수 등 석학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런 기술은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되기 시작할 겁니다.”
◇저장하다: 과거를 미래에 꺼내 보다
사람의 기억과 의식을 보존하고 이식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는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화상으로 만난 스톡홀름 미래학연구소의 안데르스 샌드버그 선임연구원은 “신경 구조 전체를 담은 뇌 지도인 ‘커넥톰(connectome·신경 배선도)’을 그대로 복제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 똑같은 기억과 사고 체계를 가진 디지털 세상 속의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며 “당신은 데이터센터 속에서 수세기 넘게 살아 숨 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결국 우리의 사고, 감정,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아니겠느냐”는 철학적 설명을 덧붙였다. 샌드버그 선임연구원은 스톡홀름대에서 컴퓨터 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연구원을 거친 대표적 뇌과학자다.
뇌과학자들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우선 인간의 뇌 단면을 전자 현미경으로 수천만 장 층층이 찍어 3D(차원)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이후 프로그램으로 복잡한 뉴런·시냅스 부분까지 연결하면 디지털 세상에 인간의 뇌와 똑같은 뇌가 복제된다. 샌드버그 연구원은 이를 통해 생물학적인 뇌의 신경망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컴퓨터와 같은 전자 기기에 전송하는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인드 업로딩은 이미 상상의 영역을 벗어났다”면서 “(인간의 뇌를 복제하는 일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최근 초파리 성체의 뇌 지도를 완성하는 등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 세바스찬 승(승현준) 교수 등이 초파리의 뇌 지도를 만들어냈듯 인간의 뇌 지도를 완성하는 일도 머지않아 가능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가령 지금은 광학 현미경이 100nm(1nm=10억분의 1m)보다 작은 크기를 관찰하기 어려워, 뇌의 단층을 볼 때 10nm 이하의 세포막 내부까지 촘촘히 분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샌드버그 연구원은 “약물로 뇌를 인위적으로 키우거나 초정밀 관측이 가능한 현미경 기술이 발전하면 마인드 업로딩 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술적 난관뿐 아니라 윤리적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은 적잖다. 샌드버그 연구원은 “마인드 업로딩이 실현된다면 뇌는 생물학적 기관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여겨질 수도 있다”며 “결국 ‘나’라는 정체성이 뭔지, 인간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연구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래엔 인간이란 종을 새로 정의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간과 컴퓨터가 합쳐진 ‘포스트 휴먼’이랄까요.”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사람의 기억과 의식을 컴퓨터나 로봇에 이식하면 수명의 한계가 없는 영원불멸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이진영·Midjourney
◇교체하다: 부품 갈아 끼우듯 장기를 교체
인간의 의식과 기억은 컴퓨터에 업로드한다면, 인간의 육체는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는 방식이 고안되고 있다. “자동차가 말썽을 부리면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우듯, 늙거나 망가진 장기를 ‘새것’으로 바꿔 끼우면 좋지 않을까요. 이 아이디어가 말도 안 된다고 들릴 수 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의학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혁신적 접근법입니다.” 유전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나카우치 히로미쓰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는 현재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감각과 의식이 없는 인체인 ‘보디오이드(Bodyoid)’를 연구하고 있다. 보디오이드란 단순히 말해 뇌 없는 신체를 뜻한다. 동물의 몸속에서 사람의 줄기세포를 키워 만든 이식용 장기 ‘키메라(Chimera)’를 연구해 ‘괴짜 과학자’란 소리를 들은 이 교수는 이젠 뇌 기능이 없는 몸을 통째로 배양하자는 아이디어를 들고나온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여분의 나’를 배양해 새 장기를 얻고 고장 난 장기와 바꿔 끼우자는 게 나카우치 교수의 기본 생각이다.
그래픽=이진영·Midjourney
물론 윤리적 논란은 거셀 전망이다. 지난달 세계적 테크 잡지 MIT(매사추세츠공대) 테크놀로지리뷰에 “윤리적으로 조달된 ‘여분의 인체’는 의학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제목의 기고가 올라오자 의학계에선 파장이 일었다. 나카우치 교수 등은 이 기고에서 보디오이드로 신약을 실험하고, 보디오이드를 통해 만든 장기는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하자고 주장했다. 나카우치 교수는 인터뷰에서 “비윤리적이란 비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법적으로 뇌사 환자를 사망했다고 간주하듯 감각과 의식이 없는 보디오이드도 똑같이 봐야 한다”며 “보디오이드에서 완벽한 상태의 장기를 얻으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많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보디오이드로 배양된 장기는 전 세계적으로 이식받을 장기가 부족해 사망하는 환자가 느는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나카우치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또 “전 세계 연구진은 수많은 쥐, 원숭이 등 동물을 희생해가며 각종 임상 시험을 하는데, 동물과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실험 데이터의 99%는 사실상 폐기된다”며 “보디오이드를 활용한다면 훨씬 정교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 현대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인위적인 장기 배양이라는 아이디어가 현실화된다면 경제적 가치도 클 전망이다. 시장조사 기관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장기 보존 시장은 지난해 2730억달러(약 388조원)에서 2034년 5139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다만 보디오이드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은 넘어야 할 산이다. 나카우치 교수는 “기술적 준비는 이미 끝났다”며 “윤리적 문제와 규제만 해결된다면 15~20년 안에는 보디오이드가 세상에 나오리라 기대된다”고 했다. “장기 교체가 현실화되면 오늘날 인간 수명의 한계로 여겨지는 130세를 넘기는 일도 가능해질 겁니다.”
◇진화하다: 장수 동물로부터 힌트를 얻다
생물학자들은 불로불사의 비밀을 동물에게서도 찾고 있다. 400년 넘게 사는 그린란드 상어, 암에 쉽게 걸리지 않는 코끼리 등을 연구해 인간의 항노화 단서를 찾는 연구다. 생물학을 기반으로 노화를 연구한 세계적 석학 스티븐 어스태드 미 앨라배마대 생물학과 석좌교수는 최근 담수에 서식하는 무척추동물인 히드라와 바다 조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론상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히드라와 500년 넘게 살 수 있다는 바다 조개(대양백합조개)를 통해 장수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어스태드 교수는 지난 10일 화상 인터뷰에서 “히드라는 노화가 진행되지 않고, 바다 조개는 수백 년 동안 뛸 수 있는 심장을 갖고 있다”며 “조개는 온몸을 감출 정도로 크고 무거운 껍데기를 열고 닫으며 사는데, 어떻게 500년을 넘게 살면서 수백 년 동안 근육이 정상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영국 뱅거대 연구진이 아이슬란드 해안가에서 발견한 대양백합조개. 507세로 추정된다. /영국 뱅거대
어스태드 교수는 “단백질에 노화의 비밀이 감춰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통상 단백질은 노화와 함께 손상이 일어나 끈적한 형태로 변하며 서로 달라붙는다. 그리고 이런 노화된 단백질 응집체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대표적으로 알츠하이머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뇌에 축적돼 생긴 플라크가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알려졌다. 어스태드 교수는 “조개를 아밀로이드 베타에 노출시켜 단백질 응집체가 생기는지 실험해 봤더니 응집체가 생기지 않더라”며 “조개는 단백질의 노화를 막는 성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스태드 교수는 동물 연구로 장수의 비밀이 풀리면 2150년 전에 150세까지 생존한 ‘초장수 인간’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물을 통해 단순히 오래 사는 비결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 암·심장병부터 비만까지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법까지 발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스태드 교수는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비만 치료제 성분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도 힐라 몬스터라는 독도마뱀의 타액 연구로 빛을 보게 됐다”면서 “GLP-1처럼 동물 연구를 통한 신종 약물이 ‘의료 혁신’을 가져올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항생제가 인류의 기대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처럼 새로운 약물이 속속 나오면서 ‘초장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동물 연구를 통한 새로운 치료제의 등장, 유전자 조작 기술의 발전 등에 힘입어 150년쯤 뒤엔 인류의 기대 수명이 100세에 도달할 것으로 봅니다.”
◇제거하다: 노화 세포를 없앤다
미국의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약 200만달러를 투자한다. 그는 매일 영양 보충제를 54알 먹고 고압 산소실에서 순수한 산소를 마시는데, 특히 아들의 혈장을 자기 몸에 주입하는 ‘회춘법’으로 주목받는다. 지난 10일 서울대 국제백신연구소에서 만난 박상철 전남대 의대 석좌교수는 “노화도 설계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인간이라면 거스를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여겨졌던 노화도 실제로 증상을 완화하거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삼성종합기술원 웰에이징연구센터장 등을 지낸 한국의 대표적인 노화 연구자다.
박 교수는 “최근 늙은 세포를 복제해 정상적 세포를 만들어내고, 역(逆)노화로 신체를 젊어지게 하는 등 새로운 처치법이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장수 연구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늙은 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제노제(除老劑)’와 젊은 피를 주입하는 역노화법을 주목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제노제란 미국 미네소타대의 커크우드 박사팀이 제시한 개념으로, 노화의 특징이 나타나는 세포만 선택적으로 없애 젊음을 유지하는 원리”라며 “각종 퇴행성 질환이 나타나는 환자의 기능이 회복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70대에 접어든 노인 몸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는 늙은 세포는 전체의 2~3% 수준에 불과합니다. 노화를 촉진할 수 있는 몇몇 늙은 세포를 빠르게 없애 젊음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죠.” 박 교수는 다만 늙은 세포만 완벽히 제거하는 방법은 앞으로 알아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람을 나이 들게 하는 ‘노화 인자’는 혈액 속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박 교수도 “젊은 쥐와 늙은 쥐의 복강을 연결하는 실험을 했더니 젊은 쥐는 늙고, 늙은 쥐는 젊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혈액 속 단백질인 GDF11 등 여러 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현재 이 인자들의 조합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했다. 학계에선 노화 유전자를 찾는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다. 박 교수는 “노화 유전자를 찾기 위한 도전은 수십 년간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정상적인 노화’를 유도하는 유전자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까지 사람을 늙게 하는 유전자는 찾지 못한 만큼, 노화 유전자를 발견한다면 노화 연구에도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라는 전망이다.
각종 의·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더 오랫동안 더 건강하게 사는 세상이 열리면 그 경제적 가치는 엄청날 수 있다. 마틴 엘리슨 옥스퍼드대 교수 등은 ‘항노화의 경제적 효과’란 보고서에서 “미국에서만 기대 수명이 1년 연장되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38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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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당신의 과거 기억, 데이터센터에 저장...수세기 동안 살아숨쉬게 될 것"
2100년의 미래. 당신은 과거의 기억을 기억 탱크에 저장해 두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된다. 정신이 계속 살아남게 되면 인간의 외피(外皮)인 몸뚱이가 노쇠하더라도 당신의 존재는 불멸한다. 인간이란 종(種)을 생물학적으로만 정의 내리기 어려워 ‘포스트 휴먼’이란 새로운 개념도 등장한다. 정신적 영생(永生)뿐이 아니다. 생물학적 노화도 거스르는 세상이 열린다. 마치 썩은 이를 빼고 임플란트를 심듯, 내 장기와 똑같은 장기를 키워내 병든 나의 장기와 바꿔 다는 날이 온다.
마치 공상과학(SF) 영화 속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나이 듦’이란 시간 흐름을 거스르고 영생을 꿈꾸는 과학적 연구가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WEEKLY BIZ는 항(抗)노화 등 각 분야 전문가 4인을 인터뷰해 인류의 미래에 펼쳐질 영생의 세계를 미리 엿봤다. “당신의 기억은 분명 백업 복사본을 갖게 될 것”이란 뇌과학자, “당신의 장기를 자동차 부품처럼 갈아 끼우게 될 것”이라는 의대 교수 등 석학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런 기술은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되기 시작할 겁니다.”
◇저장하다: 과거를 미래에 꺼내 보다
사람의 기억과 의식을 보존하고 이식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는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화상으로 만난 스톡홀름 미래학연구소의 안데르스 샌드버그 선임연구원은 “신경 구조 전체를 담은 뇌 지도인 ‘커넥톰(connectome·신경 배선도)’을 그대로 복제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 똑같은 기억과 사고 체계를 가진 디지털 세상 속의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며 “당신은 데이터센터 속에서 수세기 넘게 살아 숨 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결국 우리의 사고, 감정,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아니겠느냐”는 철학적 설명을 덧붙였다. 샌드버그 선임연구원은 스톡홀름대에서 컴퓨터 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연구원을 거친 대표적 뇌과학자다.
뇌과학자들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우선 인간의 뇌 단면을 전자 현미경으로 수천만 장 층층이 찍어 3D(차원)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이후 프로그램으로 복잡한 뉴런·시냅스 부분까지 연결하면 디지털 세상에 인간의 뇌와 똑같은 뇌가 복제된다. 샌드버그 연구원은 이를 통해 생물학적인 뇌의 신경망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컴퓨터와 같은 전자 기기에 전송하는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인드 업로딩은 이미 상상의 영역을 벗어났다”면서 “(인간의 뇌를 복제하는 일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최근 초파리 성체의 뇌 지도를 완성하는 등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 세바스찬 승(승현준) 교수 등이 초파리의 뇌 지도를 만들어냈듯 인간의 뇌 지도를 완성하는 일도 머지않아 가능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가령 지금은 광학 현미경이 100nm(1nm=10억분의 1m)보다 작은 크기를 관찰하기 어려워, 뇌의 단층을 볼 때 10nm 이하의 세포막 내부까지 촘촘히 분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샌드버그 연구원은 “약물로 뇌를 인위적으로 키우거나 초정밀 관측이 가능한 현미경 기술이 발전하면 마인드 업로딩 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술적 난관뿐 아니라 윤리적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은 적잖다. 샌드버그 연구원은 “마인드 업로딩이 실현된다면 뇌는 생물학적 기관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여겨질 수도 있다”며 “결국 ‘나’라는 정체성이 뭔지, 인간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연구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래엔 인간이란 종을 새로 정의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간과 컴퓨터가 합쳐진 ‘포스트 휴먼’이랄까요.”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사람의 기억과 의식을 컴퓨터나 로봇에 이식하면 수명의 한계가 없는 영원불멸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이진영·Midjourney
◇교체하다: 부품 갈아 끼우듯 장기를 교체
인간의 의식과 기억은 컴퓨터에 업로드한다면, 인간의 육체는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는 방식이 고안되고 있다. “자동차가 말썽을 부리면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우듯, 늙거나 망가진 장기를 ‘새것’으로 바꿔 끼우면 좋지 않을까요. 이 아이디어가 말도 안 된다고 들릴 수 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의학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혁신적 접근법입니다.” 유전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나카우치 히로미쓰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는 현재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감각과 의식이 없는 인체인 ‘보디오이드(Bodyoid)’를 연구하고 있다. 보디오이드란 단순히 말해 뇌 없는 신체를 뜻한다. 동물의 몸속에서 사람의 줄기세포를 키워 만든 이식용 장기 ‘키메라(Chimera)’를 연구해 ‘괴짜 과학자’란 소리를 들은 이 교수는 이젠 뇌 기능이 없는 몸을 통째로 배양하자는 아이디어를 들고나온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여분의 나’를 배양해 새 장기를 얻고 고장 난 장기와 바꿔 끼우자는 게 나카우치 교수의 기본 생각이다.
그래픽=이진영·Midjourney
물론 윤리적 논란은 거셀 전망이다. 지난달 세계적 테크 잡지 MIT(매사추세츠공대) 테크놀로지리뷰에 “윤리적으로 조달된 ‘여분의 인체’는 의학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제목의 기고가 올라오자 의학계에선 파장이 일었다. 나카우치 교수 등은 이 기고에서 보디오이드로 신약을 실험하고, 보디오이드를 통해 만든 장기는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하자고 주장했다. 나카우치 교수는 인터뷰에서 “비윤리적이란 비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법적으로 뇌사 환자를 사망했다고 간주하듯 감각과 의식이 없는 보디오이드도 똑같이 봐야 한다”며 “보디오이드에서 완벽한 상태의 장기를 얻으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많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보디오이드로 배양된 장기는 전 세계적으로 이식받을 장기가 부족해 사망하는 환자가 느는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나카우치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또 “전 세계 연구진은 수많은 쥐, 원숭이 등 동물을 희생해가며 각종 임상 시험을 하는데, 동물과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실험 데이터의 99%는 사실상 폐기된다”며 “보디오이드를 활용한다면 훨씬 정교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 현대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인위적인 장기 배양이라는 아이디어가 현실화된다면 경제적 가치도 클 전망이다. 시장조사 기관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장기 보존 시장은 지난해 2730억달러(약 388조원)에서 2034년 5139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다만 보디오이드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은 넘어야 할 산이다. 나카우치 교수는 “기술적 준비는 이미 끝났다”며 “윤리적 문제와 규제만 해결된다면 15~20년 안에는 보디오이드가 세상에 나오리라 기대된다”고 했다. “장기 교체가 현실화되면 오늘날 인간 수명의 한계로 여겨지는 130세를 넘기는 일도 가능해질 겁니다.”
◇진화하다: 장수 동물로부터 힌트를 얻다
생물학자들은 불로불사의 비밀을 동물에게서도 찾고 있다. 400년 넘게 사는 그린란드 상어, 암에 쉽게 걸리지 않는 코끼리 등을 연구해 인간의 항노화 단서를 찾는 연구다. 생물학을 기반으로 노화를 연구한 세계적 석학 스티븐 어스태드 미 앨라배마대 생물학과 석좌교수는 최근 담수에 서식하는 무척추동물인 히드라와 바다 조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론상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히드라와 500년 넘게 살 수 있다는 바다 조개(대양백합조개)를 통해 장수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어스태드 교수는 지난 10일 화상 인터뷰에서 “히드라는 노화가 진행되지 않고, 바다 조개는 수백 년 동안 뛸 수 있는 심장을 갖고 있다”며 “조개는 온몸을 감출 정도로 크고 무거운 껍데기를 열고 닫으며 사는데, 어떻게 500년을 넘게 살면서 수백 년 동안 근육이 정상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영국 뱅거대 연구진이 아이슬란드 해안가에서 발견한 대양백합조개. 507세로 추정된다. /영국 뱅거대
어스태드 교수는 “단백질에 노화의 비밀이 감춰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통상 단백질은 노화와 함께 손상이 일어나 끈적한 형태로 변하며 서로 달라붙는다. 그리고 이런 노화된 단백질 응집체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대표적으로 알츠하이머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뇌에 축적돼 생긴 플라크가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알려졌다. 어스태드 교수는 “조개를 아밀로이드 베타에 노출시켜 단백질 응집체가 생기는지 실험해 봤더니 응집체가 생기지 않더라”며 “조개는 단백질의 노화를 막는 성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스태드 교수는 동물 연구로 장수의 비밀이 풀리면 2150년 전에 150세까지 생존한 ‘초장수 인간’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물을 통해 단순히 오래 사는 비결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 암·심장병부터 비만까지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법까지 발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스태드 교수는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비만 치료제 성분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도 힐라 몬스터라는 독도마뱀의 타액 연구로 빛을 보게 됐다”면서 “GLP-1처럼 동물 연구를 통한 신종 약물이 ‘의료 혁신’을 가져올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항생제가 인류의 기대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처럼 새로운 약물이 속속 나오면서 ‘초장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동물 연구를 통한 새로운 치료제의 등장, 유전자 조작 기술의 발전 등에 힘입어 150년쯤 뒤엔 인류의 기대 수명이 100세에 도달할 것으로 봅니다.”
◇제거하다: 노화 세포를 없앤다
미국의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약 200만달러를 투자한다. 그는 매일 영양 보충제를 54알 먹고 고압 산소실에서 순수한 산소를 마시는데, 특히 아들의 혈장을 자기 몸에 주입하는 ‘회춘법’으로 주목받는다. 지난 10일 서울대 국제백신연구소에서 만난 박상철 전남대 의대 석좌교수는 “노화도 설계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인간이라면 거스를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여겨졌던 노화도 실제로 증상을 완화하거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삼성종합기술원 웰에이징연구센터장 등을 지낸 한국의 대표적인 노화 연구자다.
박 교수는 “최근 늙은 세포를 복제해 정상적 세포를 만들어내고, 역(逆)노화로 신체를 젊어지게 하는 등 새로운 처치법이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장수 연구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늙은 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제노제(除老劑)’와 젊은 피를 주입하는 역노화법을 주목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제노제란 미국 미네소타대의 커크우드 박사팀이 제시한 개념으로, 노화의 특징이 나타나는 세포만 선택적으로 없애 젊음을 유지하는 원리”라며 “각종 퇴행성 질환이 나타나는 환자의 기능이 회복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70대에 접어든 노인 몸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는 늙은 세포는 전체의 2~3% 수준에 불과합니다. 노화를 촉진할 수 있는 몇몇 늙은 세포를 빠르게 없애 젊음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죠.” 박 교수는 다만 늙은 세포만 완벽히 제거하는 방법은 앞으로 알아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람을 나이 들게 하는 ‘노화 인자’는 혈액 속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박 교수도 “젊은 쥐와 늙은 쥐의 복강을 연결하는 실험을 했더니 젊은 쥐는 늙고, 늙은 쥐는 젊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혈액 속 단백질인 GDF11 등 여러 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현재 이 인자들의 조합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했다. 학계에선 노화 유전자를 찾는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다. 박 교수는 “노화 유전자를 찾기 위한 도전은 수십 년간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정상적인 노화’를 유도하는 유전자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까지 사람을 늙게 하는 유전자는 찾지 못한 만큼, 노화 유전자를 발견한다면 노화 연구에도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라는 전망이다.
각종 의·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더 오랫동안 더 건강하게 사는 세상이 열리면 그 경제적 가치는 엄청날 수 있다. 마틴 엘리슨 옥스퍼드대 교수 등은 ‘항노화의 경제적 효과’란 보고서에서 “미국에서만 기대 수명이 1년 연장되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38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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